한희원 미술관에서

오만원 지폐의 신사임당,
그림과 시를 함께 품었던 여인처럼
화가가 시인이 되는 일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
미술과 체육 시간은
늘 공포의 발자국처럼 다가왔으니
재주 없는 자의 두려움이었다.

시월의 광주, 양림동은
문화축제의 물결로 출렁이고
허름한 가옥들은 성형수술을 하듯
겉모습을 단장하지만
좁은 골목길은 결코 넓어지지 않는다.
미로(迷路) 같은 길은
나를 오래 헤매게 한다.

그 길 끝에서 찾은 미술관,
붉은 노을과 긴 그림자,
먼 종소리가 화폭을 메운다
몽환의 유화(油畵)로 가득한 공간.

시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시가 되는 자리.
플라타너스 아래로 떨어진 별들을
조심스레 주우며,
그 몽환(夢幻)의 시간 속에
나 또한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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