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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최근 발표 시는 박도진 시인의 - 이 길을 걸으면 - 입니다.

이 길을 걸으면

_ 박도진 · 2026-03-20 12:55

이 길을 걸으면
문득 묘한 감정이 마중 나온다
가슴속 삐걱이는 낡은 문을 열고
차이콥스키의 선율 한 자락 흐르는 듯

여섯 해를 닳도록 밟았던 길,
이제 펭귄마을을 찾은 낯선 이들은
그저 풍경 하나로 스쳐 지나가지만
교정 터에 들어선 아파트 숲 사이로
까까머리 소년은
여전히 책가방을 들고 서 있다

등굣길,
나란히 걷던 여고생들의 그림자와
수줍게 엇갈리던 눈빛이
예순 해 세월을 건너 한꺼번에 밀물진다
​기념각 교회는 예전 그대로이고
매화는 다시 제 향기를 틔우건만

차마 되돌릴 수 없는 것은
그 시절 맑고도 애잔한 마음자리뿐
오늘도 이 길을 걷는다
세월의 저편에서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
소년의 숨결을 가만히 만져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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