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가장 단정한 얼굴로
예배당 문을 밀고 들어선다
성가대의 화음이 천장 위로 맑게 올라가고
나는 고개를 숙여
온유한 사람처럼 기도한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붉은 짐승이 자라고 있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털을 세우고
억울함에 이빨을 드러내며
부러움에 꼬리를 흔들던 뜨거운 열기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이름표 뒤로
나는 오래도록
그 아이를 가두어 두었다
주여,
이 분노를 도려내 주소서
이 부끄러움을 씻어 주소서
그렇게 기도할수록 붉은 판다는 몸집을 불렸다
어느 날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서 나를 보았다
십자가 아래 선 사람은
티 없는 어린 양이 아니라
상처 입은 제 안의 짐승까지
끌어안고 선 존재라는 것을
주님은
내 안의 억압된 붉은 감정을
내쫓으라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네 분노와 욕망
그 위태로운 흔들림마저 데려오라 하셨다
그날 이후 묶임을 풀었다
예배당 의자에 앉아
내 안의 붉은 판다와
함께 찬송을 부른다
거친 숨결은 여전하지만
더는 도망치지도, 숨기지도 않는다
신앙이란
짐승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그 야성마저 길들이며
함께 빛 속으로 걸어 나오는 일임을
인생의 막바지에서 늦게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