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와 가게 사이, 헐거운 틈마다
임대와 매매를 알리는 종이들이 매달려 있다
밤새 숫자를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다
끝내 용기를 가장해 내건
작은 항복의 깃발들
문을 닫는 일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대출금 독촉하는 은행의 눈빛은 서늘하고
철거 비용마저 짐으로 얹히는 폐업의 무게
누가 이 적막한 풍경을 예견했을까
손가락 하나로 주문이 끝나고
다음 날 새벽, 물건이 문 앞에
소리 없이 당도하는 매끄러운 세상
시간을 벌고 걸음을 아낀 대가로
재래의 거리는 서서히 숨을 거둔다
지능을 가진 기계가 일자리를 위협하고
불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지갑을 꿰맨다
꼬마빌딩 한 채면
노후의 문턱이 평탄할 줄 알았던 이들
세상의 속도가 이토록 잔인할 줄 몰랐다며
오늘도 텅 빈 복도에서
낮은 목소리로 울음을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