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 속의 시

무슨 시를
붕어빵 찍어내듯 그리도 많이 쓰느냐고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모든 순간 하나님의 은총임을.

끝없이 이어지는 지하철 공사장,
출퇴근 길에 덩치 큰 버스가 빠져나가려면
길 위에 시간을 퍼붓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배웠다.

뒤늦게 붙잡은 시,
돈과 거리가 멀어도
이상하게 끈적한 매력에 이끌려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 시간 동안
붐비는 버스 안에서 네이버 메모를 두드리면
어느새 윤곽이 떠오른다.
집단지성 인공지능과 씨름하며
시어(詩語)를 밀고 당긴다.

예전엔 끙끙대며
오래 붙들어도 겨우 한 편을 얻었지만
이제는 버스 타는 시간만큼
할인(割引)하여 시가 완성된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도
싱싱한 날것의 언어는 만들지 못한다.
그저 냄새 밴 묵은 것만 내놓을 뿐.
그래서 나는 믿는다
싱싱하게 날로 먹을 수 없는 시는 이미 죽은 것이라고

아, 은총 속에 피어나는 시의 얼굴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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