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아 천천히 가자

어제 같은 오늘인데 세월은 바람같이 잘도 흐른다.
세월아 천천히 좀 가자
뭐가 그리 바쁘다고 헐어놓으면
마포바지 방귀 빠지듯 흔적 없고
한주 시작하면 옛날 보리 식은 밥 굴어지듯
금방 토요일이 가고 또 오니 이 마음 어이 따라가랴
산수라니, 어이없어 기가 콱 막히기도 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팔십에 머물기로 더 이상 떡국을 안 먹는다

그 나이 되어보니 실은 별것도 아닌데! 어느 사이
안 먹어도 되는 떡국만 자꾸 쌓이게 되니
숫자는 세지 않는데 나잇살은 왜 따라 붓나
변해가는 걸 내가 알게 느껴지기도 한다.
앉아 있어도 엉덩이 볼기짝 아프고 소변도 못 참고 줄줄이고
치아가 나빠진 건 오래전이고 눈은 안개로 뿌옇게 흐리고
허리다리 무너진 소리 가슴 철렁하기도 하다
아무리 부정해도 옳건 오고 가는 건 가나 부다

그래도 기왕에 사는 거, 육체야 늙어가는 세월에
주인공이지만 좀 더 새로운 호기심과 열정으로
오늘 대학에 입학한 학생처럼 “내 인생을 바꾼 대학”
항상 푸르고 발랄한 향기로 마음은 청춘이라고
억지 써가며 배우다 죽게 하소서!
가는 세월 어이하지 못해도 내 건강은 내가 지킨다. 큰 소리쳐 보며

아직은 내 할일 끝을 못 찾아, 거둘 일도 두리번거리며
거울에 비친 저게 내 모습 내 얼굴이던가 도?
어느 하루에 이리 된다면 누구나 다 못 살겠 지만
안개비에 속옷 젖듯 스며오는 얼굴 훈장
그래도 포기 않고 내가 살지! 세월아 너만 가라
난 원래 천천이고 느림보란다
그래서 난 지각 인생이란다, 천천히 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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