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능소화는 아무에게나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다
약속이라도 있는양
저 높은 담장을 넘어 고운 모습을 보여도
우리 마음이
바다처럼 출렁이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으니

능소화는 아무에게나 여름의빛을 내어주지 않는다
주황색 열정을 꼬옥 품에 안고서
저 봄의 언덕을 숨가프게 넘어 기다리고 있어도
우리 걸음이
산노루처럼 뛰지못하면 잡을 수 없으니

모두들 더위에 지쳐 꽃잎을 닫을 때
하늘을 향해 치솟으며 기도하는 덩굴손
그 그늘 밑에서
슴죽이며. 바라보는 눈망울에
세월의 흔적만 겹겹이 쌓여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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