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벌고추
- 시인: 박도진
- 작성일: 2025-09-02 14:42
내 몸은 귀한 몸
여름 햇살을 누리며 자랐다.
푸른 멍울이 붉어지기까지
여름의 불덩이를 이고
땀을 꿀처럼 삼켰다.
매운 맛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수많은 손길 거쳐
내가 닿은 곳은
낯선 도시의 할머니 품이었다
그녀의 알뜰함이 겨울을 준비할 때,
나도 방앗간에 눕기 전
한 톨의 습기까지 말려야 했다.
하지만 귀한 몸도 한 순간.
어처구니없는 노인의 실수로
고추 꼭지가 모두 잘려 나가는 순간,
나는 천덕꾸러기로 추락했다.
하늘은 연일 소나기를 쏟아내고
내 몸은 습기에 젖어 무력해졌다.
그 시련 속에서
나의 공주병은 서서히 지워졌다.
붉은 고추에서 붉은 가루로 바뀐 내 몸은
풀죽은 배추를 만날 날을 기다린다.
그날,운명처럼
김치 속에서 버무려지는 순간,
마침내 나의 첫날밤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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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햇살을 누리며 자랐다.
푸른 멍울이 붉어지기까지
여름의 불덩이를 이고
땀을 꿀처럼 삼켰다.
매운 맛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수많은 손길 거쳐
내가 닿은 곳은
낯선 도시의 할머니 품이었다
그녀의 알뜰함이 겨울을 준비할 때,
나도 방앗간에 눕기 전
한 톨의 습기까지 말려야 했다.
하지만 귀한 몸도 한 순간.
어처구니없는 노인의 실수로
고추 꼭지가 모두 잘려 나가는 순간,
나는 천덕꾸러기로 추락했다.
하늘은 연일 소나기를 쏟아내고
내 몸은 습기에 젖어 무력해졌다.
그 시련 속에서
나의 공주병은 서서히 지워졌다.
붉은 고추에서 붉은 가루로 바뀐 내 몸은
풀죽은 배추를 만날 날을 기다린다.
그날,운명처럼
김치 속에서 버무려지는 순간,
마침내 나의 첫날밤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