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풍

휩쓸고 간 흔적들
할퀸 자리마다
흠뻑 젖은 몸으로
소리 없이 울고 있다

길게 늘어선 가로수
부시시한 머리 풀고
비바람에 맞서 견뎌내고
들녘에 고개 숙인 벼
허리가 꺾여 논바닥에 드러눕고
물속에 고개 떨군 채 숨죽이고 있다

비닐하우스는 휘어지고 찢겨져
하늘 향해 날다가
전신주에 매달려 흐느끼고
거리의 간판들은 대롱거리다
길바닥에 나뒹군다

생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긴 한숨
낯설기만 한 풍경에
애타는 가슴만 쓸어내리는데,
또 다시 쏟아지려는가
먹구름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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