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하피첩

하피첩 - 정성심

노을빛 어린 치마폭에
붓끝을 담아
한 자 한 자 적어내린 책
하피첩

다산 정약용
사랑하는 아내의 치마를 찢어
그 위에 글을 심었다
작고 여린 책 한 권
그러나 무게는 천금을 넘는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장 안에
빛바랜 영혼처럼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 보물이
폐지 더미에 섞여
사라질 뻔했다니
숨이 턱 막힌다.

혹 우리 삶 어딘가에도
그렇게 귀한 것들이
무심히 내버려지고 있는 건 아닐까

곁에 있는 사람
눈길 닿는 순간들
내일이 아닌 오늘
그 진가를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시간이란 이름의 바람 속에서
헛되이 흩어지는
소중한 것들을
나는 얼마나 놓치고 있는가

하피첩을 몰라본 그 손처럼
나 또한 어리석은 손길로
보물을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지

매일매일
정신을 가다듬고
깨어 있으라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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