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의 다섯 발자국

모래 위의 다섯 발자국 수필
원당 양천석


내 나이 여든하나,
살면서 바다를 많이 봐왔지만, 오늘처럼
마음 깊이 새겨지는
바다 풍경은 없었다.
이른 아침7시.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의
모래사장 위를 육십이 넘은 네 여동생들과 함께 걸었다.

우리 다섯 남매가
한 걸음, 한 걸음 바닷 바람을 맞으며
나란히 걷는 것은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는 바다 너머에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고운 햇살은
모래위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우리 다섯 남매는 아이처럼 웃었다.
오빠, 우리 옛날에 이렇게 같이 놀아 본 적 있었나? 아마 없었을 거야, 늘
바빴지. 여 동생들은
어린 시절의 얼굴을
닮은채 웃고 있었다.

주름진 손등 위에 세월이 앉아 있었 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젊었다.
아침 바다는 말이
없었고, 우리는 대신
고요한 바다위에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사소한 기억들 어머님이 싸주신
보리밥 도시락,
장독대에 몰래 숨겨뒀던 고구마,
어릴적 함께 부렀던
노랫가락이 모래위로 하나 둘 꺼내놓고 우리 오남매는 그 위를 웃음으로 덮었다.

막내 여동생이
조심스레 말했다.
이 길이 끝나기 전에
이렇게 함께 걷게 되어 참 줗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 바다와
햇살과 바람이 우리 다섯 남매에게 허락해준 선물같은
시간이 있었다.

모래위에 선명하게
찍힌 다섯 줄의 발자국은 곧 파도에
지워질지 몰라도 그 따뜻한 순간은 내 삶의 마지막 장까지
선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2025년 5월6일 아침7시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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