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새겨진 시간

빛고을은 양림동 언덕에서
근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이방(異邦) 선교사들의 열정으로
학교와 병원 그리고 교회들이 자리 잡았고
그 학교 중 하나가 광주 숭일중고등학교였다오

어릴 적 다니던 학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낯선 아파트와 간호전문학교가 얼굴을 내밀고 있으니...
아파트 쪽문에 붙어 있는 외로운 돌담만이
학교 역사의 자취로 남아 있다오

저 낡은 돌담벽을
허물지 않고 남겨둔 것은 동문들의 애절함이었으니...
모두들 담벽을 향해서라도 속삭이고 싶었겠지
까까머리 학생의 설렘과
사춘기의 거칠은 방황도 있었겠지
옛친구들의 이야기는 돌틈속에 갇힌채
꿋꿋이 남아 있구나

저 낡은 돌담벽에는
십대의 어설픔이 걸려있고
돌담 앞에서 서성거리는 시인에게는
시간에 묻힌 기억들이 달려오네

저 돌담 너머 새로운 세대에게는
사라지지 않을 꿈이 영원히 저장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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