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서 불어오는 바람

해남은 전라도 남쪽 바다가
잠시 숨을 고르는 땅끝 마을
한때는 그저
물감자와 배추가 자라는 땅으로만
스쳐 지나던 이름이었으나
이제는 가슴 한켠에
조용히 자리 잡은 또 하나의 고향입니다

바다를 지키는 해양경찰 막내와
해남 보건소의 환한 불빛을 찾은 며느리
먼 길 돌아온 발걸음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고
손자들의 웃음이 바람과 햇살 속에 익어갑니다

길을 걷다가
음식점 간판에 ‘해남’ 두 글자만 보여도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그곳이 고향이라는 사람을 만나면
눈빛만으로 마음이 먼저 가까워집니다
손자의 고향이 곧 나의 고향이 되는 신비

가슴 깊은 곳에서 지장가처럼 흐르는
어머니의 숨결을 닮아
세월을 타고 이어지는 가족의 연줄
해남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절간의 풍경소리처럼
맑고 느리게
내 삶의 먼 길을 돌아 온몸을 감싸 안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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