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회사 뒤에 숨기
- 시인: 박도진
- 작성일: 2026-03-09 12:31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끝내 이해되지 않던 한 단어
신탁재산.
멀쩡히 새로 지은 열두 층 대리석 건물
준공하자마자
출입금지 현수막이 걸렸다
신탁회사 재산이니
무단점유하지 말 것.
저 건물 하루 은행 이자만 얼마일까
텅 빈 창문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스무 채가 넘는 소형 아파트를
갭( gap)이라는 틈새에 욕망을 채워넣던 여자
그녀가 세운 성벽이 무너진 자리마다
공실의 밤은 길고도 시렸으리라
밀린 관리비를 따라가던 손길은
마침내 신탁회사 뒤에 숨은 이름 앞에서
허공을 더듬는다
신탁회사는
이런 아픔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는다
“등기는 신탁회사 이름이니
관리비는 당신 책임입니다.”
돌아온 것은 마른 코웃음 한 줄.
신탁회사
제 재산 지킬 때는 현수막까지 내걸면서도
남의 곪은 상처 앞에서는 눈을 감는다
공평하다는 법의 그늘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신탁회사 뒤에 숨어
제 이름과 책임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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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이해되지 않던 한 단어
신탁재산.
멀쩡히 새로 지은 열두 층 대리석 건물
준공하자마자
출입금지 현수막이 걸렸다
신탁회사 재산이니
무단점유하지 말 것.
저 건물 하루 은행 이자만 얼마일까
텅 빈 창문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스무 채가 넘는 소형 아파트를
갭( gap)이라는 틈새에 욕망을 채워넣던 여자
그녀가 세운 성벽이 무너진 자리마다
공실의 밤은 길고도 시렸으리라
밀린 관리비를 따라가던 손길은
마침내 신탁회사 뒤에 숨은 이름 앞에서
허공을 더듬는다
신탁회사는
이런 아픔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는다
“등기는 신탁회사 이름이니
관리비는 당신 책임입니다.”
돌아온 것은 마른 코웃음 한 줄.
신탁회사
제 재산 지킬 때는 현수막까지 내걸면서도
남의 곪은 상처 앞에서는 눈을 감는다
공평하다는 법의 그늘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신탁회사 뒤에 숨어
제 이름과 책임을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