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의 번호

버스를 탄다
먼 곳으로 향하는 길위에서
버스는 말없는 약속을 건넨다
오늘도 당신을 어딘가에 데려다 주겠노라고.

버스 번호는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 자리의 짧은 숨표
두 자리의 단정한 발걸음,
세 자리에 새겨진 일상의 무늬들
그리고 드물게,
산의 높이를 닮은 네 자리의 이름.
무등산으로 가는 1187버스
그 숫자 속에는 이미
오르지 못한 정상의 바람이 스며 있다.

창가에 앉아
버스 번호의 첫자리를 오래 바라본다
그것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흘러가는지,
삶의 방향을 암시하는
작은 별자리처럼 읽어본다.

밋밋한 좌석 위에서
내 시의 대부분이 태어난다
덜컹거림은 행이 되고
정류장은 쉼표가 되며
사람들의 침묵은
행간에 숨은 문장이 된다.

버스 번호에서 길의 의미를 찾듯
나는 매일 되풀이 되는 고단함속에서
시의 의미를 찾는다
버스를 타고 흘러가는 일은
세상을 읽어내는 나만의 특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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