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이스(Black ice)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보다
잔설이 녹아 투명하게 숨죽인
겨울 아침이 더 두렵다

한 번이라도
눈길에 몸을 던져본 사람은 안다
건장한 다리 하나쯤
순식간에 배반하는 그 서늘한 감각을

블랙아이스가 엎드린 길위에서
슬금슬금, 기어가듯 발을 옮기는 일은
나만을 위한 조심이 아니라
아직 마주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안부까지 미리 생각하는 걸음이다

우리가 딛고 선 모든 자리에도
보이지 않는 얼음판이 깔려 있다
그 위를 무사히 건너와
지금 여기까지 살아온 사람들
모두가 이미 놀라운 생존자들이다

오늘도
두 발로 살얼음판을 딛고
무너지지 않고 살아온 일
모든 순간이 은혜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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