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산 과일주
- 시인: 박도진
- 작성일: 2025-12-30 18:50
아내가 일터에서
성탄 인사로 건네받아 온
이태리산 과일주 한 병
아내는 그것을
시간의 서랍에 깊숙이 넣어 두었다
말수가 적어지는 어느저녁
근사한 분위기에 조심스레 꺼낼 요량으로
그 사이
남편은 집안 정리를 맡았다
오랫동안 쌓인 잡동사니를 비워내며
혼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과일주의 숨을 빌려 마셨다
술병속의 붉은 수위는 말없이 낮아지고
마침내 술병을 들고 나타난 아내 앞에
남편은 차마 말을 숨기지 못한다
이미 정갈해진 방안을
물끄러미 둘러보던 아내는
비어가는 술병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남은 과실주를 둘이서 나누어 들이키며
막걸리만 알던 입술이
잠시 먼 나라의 향기에 기울어진 하루
술은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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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인사로 건네받아 온
이태리산 과일주 한 병
아내는 그것을
시간의 서랍에 깊숙이 넣어 두었다
말수가 적어지는 어느저녁
근사한 분위기에 조심스레 꺼낼 요량으로
그 사이
남편은 집안 정리를 맡았다
오랫동안 쌓인 잡동사니를 비워내며
혼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과일주의 숨을 빌려 마셨다
술병속의 붉은 수위는 말없이 낮아지고
마침내 술병을 들고 나타난 아내 앞에
남편은 차마 말을 숨기지 못한다
이미 정갈해진 방안을
물끄러미 둘러보던 아내는
비어가는 술병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남은 과실주를 둘이서 나누어 들이키며
막걸리만 알던 입술이
잠시 먼 나라의 향기에 기울어진 하루
술은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