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그리기 — 3 ​

​따로 정해진 교재는 없다
그가 긋는 선 하나하나가
그대로 살아있는 교본이 된다
​열두 가지 감정을 실어 나르는
열두 컷의 세상
거울 앞에 서서 제 얼굴을 먼저 비틀며
손끝으로 빚어낸 표정들

만화 수집가의 눈길이 머물 정도로
완숙한 필치가 흐른다
​정지와 동작
멈춤과 흐름 사이를
그가 만든 궤적에 기대어 익히고
말풍선이 숨 쉴 자리 슬쩍 비워 둔다

비틀리고 일그러진 것이 만화라지만
습작하는 손은 한순간도 게으른 적 없어
어느새 팽팽한 권투 경기 하나를 끌어온다

찰나의 동선
때리는 자와 맞는 자의 얼굴 사이
그 팽팽한 긴장의 틈새에서
삶의 박진감이
진한 연필 끝에서 먼저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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