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앞에서

가진 돈이 넉넉하다면
흐르는 물처럼 내어놓을 텐데
주머니 속 액수를 세어보다
오만, 십만, 이십만 사이에서
작은 마음이 더 작아진다.

인연이 멀어진 세월 끝에서
계좌번호가 적힌 메시지 한 줄,
그 노골스러움마저 서늘해서
축하의 기쁨보다
왠지 모를 슬픔이 먼저 스민다.

그래도 저 먼 시간에 끊겼던
가느다란 실 하나 다시 잇듯
이 결혼 소식을
화해의 신호로 받아들여 보자.
축복이란 원래 마음의 온도에서 시작되니.

돈 앞에 서면 작아지고
멋진 시 앞에서 움츠러드는 내 모습,
이 부끄러움의 껍질을
생의 마지막 날 전에 벗을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만큼은
작아진 마음으로도 축복을 건네리라.
← 시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