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전조인가
- 시인: 박도진
- 작성일: 2025-11-20 10:51
스마트폰을
시내버스 빈자리 위에 남겨두고 내려온 아침,
송금하는 손끝이
단위 하나를 헛딛으며
낯선 금액을 흘려보낸 날,
오래된 친구의 이름이
혀끝에서 까마득히 사라질 때
나는 문득,
시간이 내 어깨를 스치고 가는
서늘한 숨결을 듣는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치매’라는 단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등줄기를 얼어붙게 한다.
그래서 매일 천자문을 들여다보고
한 줄의 시를 외워 넣어도
이 작은 공포는
깊은 우물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가슴을 흔드는 그 순간마다
또 하나의 문장,
또 한 줄의 시가 내 안에서 싹을 틔운다.
두려움이 있기에
나는 더 또렷이 깨어 있고,
흔들림 덕분에
시는 더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사한다.
잊힘의 문턱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끝없이 이어지는 시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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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빈자리 위에 남겨두고 내려온 아침,
송금하는 손끝이
단위 하나를 헛딛으며
낯선 금액을 흘려보낸 날,
오래된 친구의 이름이
혀끝에서 까마득히 사라질 때
나는 문득,
시간이 내 어깨를 스치고 가는
서늘한 숨결을 듣는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치매’라는 단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등줄기를 얼어붙게 한다.
그래서 매일 천자문을 들여다보고
한 줄의 시를 외워 넣어도
이 작은 공포는
깊은 우물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가슴을 흔드는 그 순간마다
또 하나의 문장,
또 한 줄의 시가 내 안에서 싹을 틔운다.
두려움이 있기에
나는 더 또렷이 깨어 있고,
흔들림 덕분에
시는 더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사한다.
잊힘의 문턱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끝없이 이어지는 시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