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남은 자의 힘

살아 남은 자의 힘

바둑판 앞에 앉아
조용히 돌을 거두듯,
살아온 길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한 점의 실수도 없이
반듯하게 두어온 수는 없었다.
밤마다 문설주로 스며드는
부끄러운 장면들,
지우고만 싶은 흑백의 기억들이
여전히 꿈결로 찾아든다.

왜소한 체구였고
부지런하지 못한 세월이었으나
그럼에도 걸어온 길은
하늘이 허락한 은혜였다.

굴욕을 삼키고
처자식의 안녕을 위해
아첨 섞인 웃음을 지어야 했던 날들.
그 비루했던 순간들조차
이제는 묵향(墨香)처럼
내 삶을 더 깊게 적셔준다

얼룩 많은 고비를 건너왔기에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진정 힘 있는 사람임을
저 늙은 손등 위의 주름이 증명한다

그러니 이제야 안다.
이 모든 상처와 굴곡을 밑거름으로
쓰여진 이 글들이
어찌 가벼울 수 있으랴
삶의 무게가 문장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울리는 종소리처럼
깊숙이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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