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년기
by poet · 2025-08-09 18:24
예순이 넘어서부터 내 삶은 한층 더 느린 호흡을 가지게 되었다. 청장년 시절 동안 쉼 없이 달려오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벽 햇살이 부엌 창으로 스며드는 모습, 저녁 무렵 마당에 드리운 긴 그림자, 손주가 건네는 작은 손길 하나까지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이미 장성해 각자의 가정을 꾸렸고, 나는 아내와 단둘이 사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내와 함께하는 하루는 고요했지만, 그 속에는 오랜 세월 쌓인 정이 깊게 배어 있었다. 가끔은 서로의 말이 길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젊을 때는 몰랐던, 함께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큰 풍요를 누린 것은 아니지만,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는 평온한 시기가 찾아왔다.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시집 발간도 이 시기에 더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매일 아침, 한 잔의 커피와 함께 노트를 펼쳐 시 한 줄을 쓰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고, 그 습관은 노년의 삶을 단단히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건강은 노년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젊을 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생활습관이, 이제는 몸의 반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매일 아침 공원에서 맨발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체력을 유지하려 애썼다. 운동을 하며 만난 동년배들과는 금세 친구가 되었고, 그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는 인생의 다양한 맛이 담겨 있었다. 사회와의 연결을 유지하고 싶어, 지역 문화 모임과 독서회에 꾸준히 참여했다. 특히 ‘등대독서회’에서 진행한 시 낭송회와 연극 활동은 내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무대 위에서 시를 읽을 때, 청년 시절 문예반에서 느꼈던 설렘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누군가는 나이를 핑계로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나이에야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디지털 기술을 배우는 데도 힘을 쏟았다.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을 활용하는 법을 익히면서 나만의 블로그를 운영하게 되었고, 그곳에 시와 수필, 그리고 삶의 기록을 남겼다. 온라인을 통해 전국의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기쁨이었다. 댓글 하나, 메시지 한 줄이 하루를 환하게 만들었다. 노년기에 들어서면서 글의 내용도 변했다. 과거에는 내 안의 감정을 토로하거나 시대를 비판하는 글이 많았다면, 이제는 삶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시가 늘었다. 나무 한 그루, 돌담길, 오래된 마을 풍경에서 얻는 감흥이 시가 되었고, 작은 꽃잎 하나에도 오래 시선을 두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나이 들어 얻은 여유’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야말로 인생 후반부에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근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았고, 친구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들려오는 조문객의 발걸음 소리는 삶의 유한함을 더욱 또렷하게 일깨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이 강해졌다. 쓰고, 읽고,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느끼는 시간들이 한층 더 소중해졌다. 칠십을 넘긴 지금, 나는 여전히 시를 쓰고 있다. 첫 시를 썼을 때와는 다른 마음이지만, 글 속에는 여전히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숨결이 있다. 이제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려는 욕심보다는, 남은 날들을 진솔하게 기록하고,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하기를 바란다. 노년의 나는 더 이상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조급해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사람들의 미소 속에서 만족을 찾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시로 엮으며, 나의 인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