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년기
by poet · 2025-08-09 18:24
마흔이 되던 해, 나는 스스로를 ‘진짜 어른’이라 불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기의 치열한 생계와 배움의 시간을 지나, 가정과 일터에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년기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안정과 불안, 성취와 후회가 뒤섞여 밀려왔다. 가정에서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책임이 막중했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랐고, 그만큼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났다. 학원비, 교복, 책값, 생활비… 매달 빠듯한 살림 속에서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채워주려 애썼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하루하루 나를 붙들었다. 일터에서는 경력과 연륜이 쌓였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오래 몸담았던 회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기술과 방식이 도입되었고, 나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배우고 익히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후배들에게는 경험으로 조언하고, 상사에게는 성실함으로 신뢰를 얻으려 노력했다. 장년기의 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한층 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지역 문학회에서 활동하며 시집을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전국 각지의 시인들과 교류하게 됐다. 원고를 모으고, 시를 다듬고, 표지를 고르고, 출판사와 계약하는 일련의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드디어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의 벅찬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책을 손에 쥐었을 때, 청년 시절 잉크 냄새 속에서 품었던 꿈이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장년기의 삶은 성취만큼이나 상실과 마주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점점 기력이 쇠하시고, 친구들 중에도 병으로 쓰러지는 이들이 생겼다. 가까운 이의 부재는 마음에 깊은 빈자리를 남겼다. 나는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글과 독서에 쏟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은 시 속에서 천천히 녹아내렸고, 그 과정에서 글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이 시기에는 지역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며 젊은 세대와 책을 나누었고, 마을 도서관에서 시 창작 강의를 맡기도 했다. 강의실에서 만난 수강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은 나를 다시 청춘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도 시를 쓰기 위해 공책을 펴는 모습을 보며, 글이야말로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년기의 나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전보다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젊을 때는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남기고 싶어서, 나를 알리고 싶어서 썼다. 하지만 장년이 되니, 글은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시를 읽고 눈시울을 붉히거나 웃음을 지었다는 독자의 말을 들을 때, 그 어떤 보상보다 큰 힘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 느리게 살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조급하게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데 집중했다. 아침에 마당을 쓸고, 저녁에는 가족과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를 이야기했다.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강가를 달리며 바람을 맞았고,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 모든 순간이 글이 되었고, 시가 되었다. 마흔에서 예순까지의 시간은 어느새 흘러, 나는 더 이상 젊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늙지도 않은 경계에 서 있었다. 장년기의 나는 청년기의 열정과 노년기의 지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여전히 배우고, 여전히 쓰고, 여전히 사랑하려 애쓰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