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년기

by poet · 2025-08-09 18:24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무렵, 나는 세상에 홀로 서야 했다. 대학 진학의 꿈을 잠시 내려놓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근 도시로 나가 일을 시작했다. 첫 직장은 작은 인쇄소였다. 하루 종일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와 잉크 냄새 속에서 종이를 나르고, 책을 묶고, 포장하는 일을 했다. 손끝이 잉크로 새까매지고, 손바닥에는 종이에 베인 상처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활자와 종이 냄새는 묘하게도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언젠가 내가 쓴 글이 이런 책 속에 담기리라는 막연한 꿈이 더 커졌다.

청년기의 나는 매일이 분투였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니거나 독학으로 공부했다. 국어사전과 문학전집을 하나씩 사 모으며 글 공부를 이어갔다. 가끔은 문예지에 시를 투고했지만 번번이 반려되었다. 원고가 되돌아올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지만, 그 속에 적힌 심사평 한 줄이 다음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스물두 살에는 군 입대를 했다. 군 생활은 규율과 인내를 배우는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글에 대한 열정은 꺼지지 않았다. 야간 보초를 서며 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다가 머릿속으로 시를 짓곤 했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시집 한 권을 품에 안고 부대로 돌아갔고, 휴대할 수 없는 책들은 친구에게 맡겨두었다. 제대 무렵, 나는 내 인생에서 문학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사회로 돌아온 뒤, 생계를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하기도 했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기도 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도, 밤이면 작은 방 한구석에서 노트를 펴고 시를 썼다. 돈이 없어 원고지를 사지 못할 때는 폐지로 나온 종이를 주워 다듬어 썼다. 그 시절 내 글은 거칠었지만, 삶의 냄새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스물여섯 살, 우연히 지역 문학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보다 앞서 글길을 걸어간 선배 작가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 시를 읽고 솔직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너무 자기 감정에만 갇혀 있다’, ‘시어를 더 다듬어야 한다’는 말이 뼈아팠지만, 덕분에 내 글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문학회 활동을 하며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혔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시대의 흐름을 기록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농촌의 변화, 산업화의 물결, 도시로 떠나는 청년들, 남겨진 노인들의 표정이 내 시 속에 담기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나는 시를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시대의 기록’으로 인식하게 됐다.

스물아홉 살, 나는 결혼을 했다. 아내는 이해심 많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지만, 생계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은 더욱 커졌다. 아이가 태어나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아이를 돌보다가, 모두가 잠든 후에야 글을 쓸 수 있었다. 때로는 피곤에 지쳐 노트를 펼치지 못한 날도 많았다. 그러나 한 편의 시라도 완성하는 날이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청년기의 나는 늘 부족했고, 늘 배고팠다. 그러나 그 배고픔이 나를 단련시켰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기쁨과 슬픔을 모두 글의 재료로 삼는 법을 익혔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