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by poet · 2025-08-09 16:46

나의 어린 시절

나는 1952년 늦가을, 전남 나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은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고, 봄이면 벚꽃과 유채꽃이 뒤섞여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성실한 농부였고, 어머니는 손이 야무진 부지런한 여인이었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족한 가운데서도 부모님은 나와 형제들을 정성껏 길러주셨다.

유년기의 나는, 호기심 많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였다. 마을 앞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놀거나, 논둑을 따라 끝없이 달리며 하루를 보냈다. 여름이면 냇물 속 송사리를 손으로 잡아 병에 담았고, 가을이면 떨어진 감을 주워 먹으며 친구들과 웃음꽃을 피웠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글자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 났다. 마을 서당에 들렀다가 훈장님이 읽는 천자문 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고, 동네 형이 들고 다니던 초등학교 교과서를 빌려 따라 읽기도 했다.

1950년대 후반, 마을은 아직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었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것을 잊게 만들 만큼 힘이 있었다. 나는 나무로 만든 작은 공을 차며 놀았고, 아궁이 불을 지피며 밤에 군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밤이면 석유등잔불 아래서 가족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버지는 전쟁 때 겪었던 일을 들려주시기도 했고, 어머니는 옛날 전래동화를 이야기해 주셨다. 그때 들은 이야기들은 훗날 내가 시를 쓰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

학교에 입학한 뒤, 나는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교과서뿐 아니라 동화책, 위인전, 신문까지 가리지 않았다. 글자를 알게 되자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무에 달린 이름표, 상점 간판, 버스표지판이 하나하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담임 선생님은 내게 “너는 커서 글 쓰는 사람이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어린 마음속에 불씨처럼 남아 평생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물론 어린 시절이 항상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새 학기가 되면 책가방이나 연필, 공책을 마련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친구들이 새 옷을 입을 때 나는 몇 해째 입던 헌옷을 꿰매 입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부모님의 땀방울이 밴 옷이었고, 그것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오히려 이런 환경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계절마다 풍경과 일상이 달라졌다. 봄에는 보리밭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학교에 갔고, 여름에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냇가에서 수박을 식혔다. 가을이면 벼 이삭이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였고, 겨울에는 장작불 옆에서 손을 녹이며 숙제를 했다. 이렇게 사계절이 뚜렷한 시골에서 보낸 유년기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심어주었다.

당시 나에게 세상은 좁았지만, 마음속 상상은 끝이 없었다. 나는 마을 어귀를 지나 먼 길을 걸어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책 속에서 바다와 산, 도시와 다른 나라를 만났다. 교실 창밖의 들판을 바라보다가도, 머릿속에서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거나,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는 상상을 했다. 이런 꿈들이 나를 자라게 했고, 나중에 실제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세상의 복잡함을 몰랐다. 하루하루가 단순했고, 행복의 기준도 작았다. 감나무 위에 올라가 주렁주렁 달린 감을 따 먹는 일, 비 오는 날 친구들과 진흙탕에서 뒹구는 일, 겨울 아침 하얀 입김을 뿜으며 학교 가는 길에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 그 모든 것이 소중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유년기의 추억들이 나를 만든 뿌리다. 가난했지만 따뜻했고, 불편했지만 자유로웠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안다. 그리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잃지 않는 방법임을 깨닫는다.